테슬라가 자동차를 한 대도 팔지 않고도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일화는 시장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전기차만 생산해 배출량이 0에 가까운 테슬라는 남는 탄소배출권을 내연기관 제조사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국내에서는 휴켐스가 아산화질소 감축 설비를 일찌감치 도입해 잉여 배출권을 판매하며 매년 수백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더 이상 규제 장치에 머물지 않고, 경영 성과를 좌우하는 비즈니스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4차 계획기간의 변수
정부가 설정한 계획기간은 현재 3차(2021~2025)에서 4차(2026~2030)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4차 계획기간이 시작되면 유상할당 비율이 대폭 늘어날 전망입니다. 과거에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아도 과징금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할당량을 초과하면 곧바로 비용으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향되면서 시장에 풀리는 배출권 총량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철강·석유화학·시멘트처럼 배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생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위험에 놓였습니다.
CBAM이 던지는 경고
유럽연합이 예고한 탄소국경조정제도, 즉 CBAM은 ‘탄소 국경세’로 불립니다. EU 내 기업이 부담하는 높은 탄소 비용만큼 역외 기업에도 동일한 부담을 부과해 공정 경쟁을 이루겠다는 취지입니다. 국내 기업이 EU보다 낮은 탄소 가격을 유지하면, 그 차액을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결국 정부가 유상할당을 확대하는 이유는 국외로 빠져나갈 비용을 국내 감축 투자로 돌리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CBAM은 전 세계 탄소 가격을 EU 수준으로 끌어올릴 압력 장치가 될 것이며, 우리 기업이 값싼 배출권에 기대어 성장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가격은 왜 흔들리나
배출권 가격은 주식이나 유가처럼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정부 할당량, 경기 사이클, 에너지 가격, 친환경 기술 투자 속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세가 출렁입니다. 연말 부족분을 메우려다 가격 급등에 놀라는 기업도 있고, 잉여 물량을 보유했지만 시세 하락으로 수익 기회를 놓치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 흐름만큼은 ‘우상향’으로 수렴합니다.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총량 감소와 수요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기보다 구조적 상승을 전제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기업이 택할 세 갈래
기업이 취할 첫 번째 해법은 내부 감축 역량 강화입니다. 에너지 효율 향상, 공정 개선,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배출량을 근본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전략적 시장 참여입니다. 배출권을 비용이 아닌 금융 자산으로 인식하고, 가격 흐름을 모니터링해 매수·매도 시점을 정교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탄소 경영의 내재화입니다. 신규 사업과 설비 투자 단계부터 탄소 비용을 반영하고, ESG 경영과 연결해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면 투자 유치와 브랜드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됩니다.
강화되는 규제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테슬라와 휴켐스가 증명했듯, 선제적으로 대응한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